하만 인수 7년 만에 영업익 1조3000억원… “제2의 하만 발굴 시급”
초대형 M&A 필요성 갈수록 높아져 … ‘100조원 규모’ 실탄도 충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심에서도 무죄를 받으며 사실상 경영 일선 복귀의 ‘9부 능선’을 넘었다. 이 회장의 무죄 판결은 삼성이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삼성이 극복해야 할 과제와 이재용 회장의 역할, 그리고 ‘뉴 삼성’ 시대에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이 어떤 전략을 펼칠 지에 대한 전망을 상·중·하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로 있던 지난 2017년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7년 동안 굵직한 인수합병(M&A)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의 부진을 딛고 다시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이 다시 등기임원으로 복귀해 ‘제2의 하만’과 같은 빅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의 책임 경영이 가시화 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빅딜’에 나설지 주목된다.
◆ ‘미래로봇추진단’ 신설 등 로봇 사업에 강한 의지
그동안 삼성전자의 행보를 두고 총수의 사법리스크 여파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대형 투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비교적 작은 규모의 M&A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선두 주자인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카이스트 휴보 랩 연구진이 2011년 설립한 로봇 전문기업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868억원을 투자해 지분 14.7%를 매입한 데 이어, 지난해 말 콜옵션(특정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추가로 지분 20.1%를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써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의 연결 재무제표상 자회사로 편입됐다.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에 나선 이유는 정보기술(IT) 업계가 인공지능(AI) 이후의 미래 먹거리로 휴머노이드 로봇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등장해 “로봇공학의 챗GPT 순간이 오고 있다”면서 로봇 개발용 플랫폼 ‘코스모스’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삼성전자도 더 늦기 전에 휴머노이드 사업을 본격화하려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CES 2025에서 “삼성전자가 로봇 분야에서 빠르다고 볼 수 없지만 우리도 투자해서 기술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아직 시작 단계지만 새로 나온 기술을 유연하게 접목하면 우리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한 부회장 직속으로 로봇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조직인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고,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 멤버인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임명하는 등 로봇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로봇 라인업을 갖추는 한편, 향후 패러다임을 바꿀 미래로봇의 원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자체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는 등 회사의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키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2021~2023년에만 260여개 회사에 벤처 투자를 진행했고, 지난해에도 여러 건의 소규모 M&A를 성사시킨 바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자회사 삼성메디슨이 산부인과 초음파 진단 리포팅 기술을 갖춘 프랑스 AI 기반 의료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했다.
이어 7월에는 삼성리서치가 데이터를 사람의 지식 기억 및 회상 방식과 유사하게 저장·처리하는 ‘지식 그래프’ 기술을 보유한 영국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OST)’를 인수했다. 특히 이번 인수는 삼성전자 산하 삼성리서치(SR) 주도로 이뤄진 첫 M&A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OST 인수를 위해 2018년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협업하며 다각도로 기술력을 검증하는 등 공을 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 초대형 M&A 필요성 제기… ‘100조원 규모’ 실탄 충분
이재용 회장은 2016년 10월 등기임원이 됐다. 하지만 사법리스크로 인해 2019년 10월 임기를 마친 이후 더 이상 등기임원으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시기에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인 하만 인수를 성사시키는 등 삼성 창사 이래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2의 하만’과 같은 초대형 M&A에 나서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재용 회장의 등기 임원 복귀가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7년 삼성전자가 80억달러(한화 약 9조4000억원)에 인수한 하만은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른 직후 이뤄진 첫 초대형 M&A이자 그룹 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꼽힌다. 하만 인수 첫해 영업이익은 600억원에 불과했지만, 인수 후 7년이 지난 지금 하만 편입은 ‘대성공’으로 평가받으며 삼성전자의 또 다른 ‘캐시카우’로 떠오르고 있다.
2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하만의 영업이익은 △2020년 555억원 △2021년 5591억원 △2022년 8800억원 △2023년 1조1737억원 △지난해 1조3000억원으로 불과 4년 새 20배 넘게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만 삼성이 하만 인수에 지불한 금액의 13.8%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올린 영업이익(3조9683억원)을 합하면 인수 금액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하만의 실적이 급증한 것은 전장(자동차 전기 장비) 수주가 늘어나는 가운데 소비자용 제품까지 판매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하만은 프리미엄 오디오를 비롯해 디지털 콕핏,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을 BMW와 도요타를 비롯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이러한 외형을 가진 하만 인수와 비교될 만한 초대형 M&A 후보로는 앞서 살펴본 로봇 분야 이외에도 통신, 반도체 관련 업체 등이 거론된다.

먼저 노키아의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부가 M&A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8월 블룸버그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사업부 인수 희망자 가운데 삼성전자가 포함돼 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이 사업부는 전 세계 무선통신 사업자를 대상으로 기지국, 무선 기술 및 서버를 공급하는데,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3년 노키아 총 매출의 약 44%를 차지했다. 소식통은 전체 인수 금액이 100억달러(한화 약 14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강자이지만 통신장비 분야에서는 화웨이와 에릭슨 등 경쟁기업들에 비해 사업 규모가 작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1위는 점유율 31.3%의 화웨이가 차지했고, 2위 스웨덴 에릭슨(24.3%), 3위 노키아(19.5%) 순이었다. 삼성전자는 6.1%로 5위에 불과했다. 만약 삼성전자가 해당 사업부를 인수할 경우 에릭슨을 누르고 글로벌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에 대해 노키아는 “현재 관련 프로젝트가 없다”며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고, 삼성전자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빅딜’이 성사될 경우, 삼성전자의 자금력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104조원에 달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 43조1000억원에 단기금융상품이 6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10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차입금을 제외하더라도 순현금이 87조원 가량 비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도체 등에서 시설투자를 늘리고 있음에도 현금이 늘어나는 등 유동성 곳간에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대형 M&A가 각국 경쟁당국의 벽을 넘기 어려운 데다, 빅딜이 자칫 회사의 발목을 잡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어 당분간 삼성전자가 섣불리 무리한 M&A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먼저 본업을 탄탄하게 다진 후에 M&A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전자는 본원적 기술력으로 디바이스를 잘 만드는 회사”라며 “원래 강점을 가진 잘하는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이어 “M&A보다 반도체 실적 회복이 급선무”라며 “삼성이 그동안 자랑해 온 기술 격차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과 AI와 관련한 본질적인 혁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