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운용·메트리카 이어 소액주주연대도 동참… “밸류업” 요구 거세져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거버넌스 개선을 앞세워 막판 공세에 나서던 영풍이 되레 '역풍'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소액주주들을 비롯해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이 되레 영풍을 상대로 오랫동안 소홀했던 주주친화 행보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영풍 경영진이 고려아연 지배권 확보에만 매몰돼 정작 자사 주주들은 뒷전에 두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드러난 새로운 풍경이다. 일각에서는 영풍이 고려아연에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내로남불’이라는 반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소액주주·행동주의 펀드, 영풍을 ‘정조준’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영풍의 주주연대가 소액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에 가입한 것은 물론, 김두용 머스트자산운용 대표이사와도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인 머스트운용에 이어 싱가포르 헤지펀드 운용사인 메트리카파트너스까지 영풍에 주주행동주의 행보를 요구하는 시점에 소액주주들까지 가세해 주주 보호와 영풍의 지배구조 및 기업가치 개선을 촉구하는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풍의 지분 2%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머스트운용은 지난달 25일 영풍에 자사주 전량 소각과 기업가치 제고 공시를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냈다. 주가 저평가 문제가 심각한 만큼, 자사주를 소각하고 무상증자나 액면분할을 통해 유통 주식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을 빼곡히 담았다.
메트리카도 이달 초 영풍의 주주환원율 목표 등을 명시한 주주환원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들은 영풍이 주가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액트를 운영하는 컨두잇도 행동에 나섰다. 업계 등에 따르면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지난 9일 “한 달 전쯤 영풍 측에 주주명부 열람 등사를 요청했으나, 현재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조만간 소송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승자박’ 자초한 영풍 행보
영풍의 소액주주들이 주주행동주의를 요구하고 나선 데는 그간 영풍이 보여준 행보 자체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영풍 경영진이 주주친화정책에 소홀한 행보로 기업가치를 낮춘 데다, 배당금 지급 부풀리기 공시 등을 통해 주주들을 기만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풍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0.14배 수준으로, 사실상 증시에서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PBR은 기업 주가를 장부상 가치로 나눈 값으로,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에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 상태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영풍이 지난 10년 동안 자사주를 한 주도 소각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영풍 보유 자사주는 전체 주식의 6.62%인 12만1906주로, 이는 지난 2014년 보유했던 자사주와 동일하다. 이 때문에 영풍은 주주가치와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할 경우, 일반 주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최대 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여기에 영풍이 배당 지급 규모를 실제보다 더 부풀려 공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영풍이 최근 3년간 잉여현금흐름(FCF)의 최대 90% 이내에서 배당을 실시했다고 공시했지만, 실제 3년 평균 배당률은 26.8%에 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풍은 투자자 소통 창구인 IR팀이 별도로 없어, 사실상 주주들이 영풍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은 경영공시가 유일하다.
영풍이 적대적 M&A 대상인 고려아연에 대해 자사주 소각 등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되레 불거진 '영풍의 역풍'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