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윤석열 탄핵’으로 정치적 존재감 확실히 키운 헌법재판소에 경쟁의식 해석도
‘무죄로 이재명 꽃길 열어주느냐, 파기자판 유죄로 대선 출마길 막느냐’ 해석 분분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상고심 심리에 속도를 내면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대법원의 속도전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6.3 대선 전 결론을 낼 태세여서 그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 이대로만’ 가면 집권은 떼어 놓은 당상인데 돌발변수가 돌출하면서 모든 촉수를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대선이 40여일정도밖에 남지 않아 향후 나올 변수에 극도로 예민해 있는 상태다.
특히 이재명 예비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민주당이 몇 년 동안 총력전을 펼쳐 방어해 온 ‘킬 포인트’이기 때문에 고지를 몇 미터 앞두고 최대의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 ‘뭔가 수상하다’며 분위기를 일단 지켜보고 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은 ‘대선 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 항소심 판결을 확정한다면 이 후보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다면 이 후보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일단 ‘유죄’라는 꼬리표를 달고 대선에 임하게 돼 사법 리스크가 다시 한번 대선판을 휘저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능성은 낮지만 대법원이 직접 사건 유무죄를 판단하는 ‘파기자판’ 형식을 통해 유죄를 때려 버릴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또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재판 출석 가능성도 없지 않는 등 법적 문제가 임기 초반부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런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법원은 4월 23일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속행기일이 24일로 정해졌다고 공지했다. 대법원이 이 후보 사건을 22일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고 속행기일을 연 데 이어 이틀 만에 다시 속행기일을 여는 것이다.
통상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 게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바로 기일을 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전직 대법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법조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걸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 2부에 사건을 배당했다가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전날 심리했는데 다음날 또 심리한다는 것도 전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원합의체의 속행기일을 공지하는 것도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민주당으로선 조 대법원장의 속내와 진의가 진짜 궁금하다. 조 대법원장이 과연 ‘우리 편’인지 아니면 ‘적군’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태도를 보면 대선판에 이 후보 사법 리스크 꼬리표를 만들어두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해석이 나온다.
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집권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 뇌관을 직접 제거해주고 당선 축하의 카페트를 깔아주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이재명 후보 중심의 희망회로를 열심히 돌린 긍정적 해석의 결과다.
민주당의 해석이 어떻든 간에 대법원의 ‘신속 재판’ 결행은 이번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비친다. 그것이 ‘친이재명’인지 ‘반이재명’인지 아직은 결론내리기 어렵지만 대법원의 ‘대선 전 결론’ 의지는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평소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속 재판’을 강하게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도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나오는 해석은 ‘대법원의 헌법재판소 질투’라는 것이다.
사실 대법원은 행정부, 입법부와 함께 사법부를 대표하는 중추기관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87년 개헌 이후 탄생한, ‘제 2부’쯤 되는 헌법기관이다. 그동안 존재감도 별로 없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형배 전 대행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등 ‘정치적 위상’을 확실히 세웠다.
헌법재판소 9인 가운데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기 때문에 그동안 헌재는 대법원의 ‘하위기관’쯤으로 인식된 것도 사실이다. 대법관에 임명되지 ‘못한’ 법조인의 다음 코스가 헌법재판관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헌재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가장 확실히 증명해보였고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었다. 법조인의 꽃인 대법관들로서는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당연히 갔을 것이다.
대법원은 “국가의 중대사나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헌재에서 다뤄지고 헌재가 헌정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대법원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에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은 존재감을 잃어가는 대법원에 굴러 들어온 ‘떡’이었고 이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해 실추된 위상과 자존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자신의 손에 들린 ‘떡’을 어떻게 해치울까. 민주당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를 위해 가장 확실한 꽃길을 열어주려고 작심했다. 공소기각으로 무죄를 확정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주변에서는 ‘유죄 취지로 파기해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대법원이 파기자판을 때릴 것이라는 큰 희망회로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대법원이 파기자판을 한다면 이는 100만 원 이상의 유죄를 확정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얘기다. 만약 대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다면 이재명 후보는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고지를 몇 미터 앞둔 민주당에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헌재의 탄핵으로 대통령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야당 유력주자의 운명이 대법관들 손바닥 위에서 물 밖에 나온 금붕어처럼 파닥거리고 있다. 정치가 이렇게 사법부의 ‘판결봉’ 한방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정치인들은 판사의 한마디에 오매불망 목을 매는 절망의 시대를 국민들만 힘겹게 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