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지정, 제주에서 시작해야 한다
  • 이건오 기자
  • 승인 2025.04.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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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PP·ESS·V2G를 활용한 계통 유연성 확보 전략

[브이피피랩 차병학 대표] 지난 4월 14일, 제주에서 주목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 동안, 제주도 내 전력 수요의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해 한시적으로 ‘RE100’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날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은 약 2,000여가구의 월 평균 전력 사용량(300kWh)에 해당하며, 주택용 전기요금 환산 1억2,000만원, 전기차 1만2,420여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또한 도내 소비량 충당 후 육지로 역송한 전력도 총 621MW로, 당일 오후 1시 기준 전력 수요의 30%에 해당하는 큰 규모였다. 분명 의미 있고 주목할 만한 소식이지만 내용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일 도내 전력수급현황을 보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전력 생산의 102~108%를 내외했던 해당 시간, 즉 ‘RE100’을 달성했던 시간에도 제주는 안정적인 전력망 유지를 위해 친환경연료인 바이오중유를 사용한 제주기력 발전설비를 약 120MWh 가동하고 있었다. 또한 실시간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전력의 특성 탓에, 초과 전력 역송 역시 부득이 육지로 보내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수요를 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인위적으로 멈추거나(출력제한), ESS, V2G 같은 에너지 신산업의 확대, 송전망 확충 같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해결책이 뒤따라야 한다. RE100을 잠시나마 달성한 제주의 상황은 많은 의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전력시장에서 활동하는 사업자들에겐 적절한 서비스와 상품을 통해 국가적인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는 분산에너지특별법 및 분산에너지특구 지정, 지역별 차등요금제 실시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산에 대비하고자 하나 경제성 확보 측면에서는 아직 난망한 상황이다. 현재 기준으로는 높은 원가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는 활용도 못하면서 원가는 낮지만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화력 발전도 동시에 가동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제주의 RE100 달성은 긍정적으로 보면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남은 전력을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는 대명제의 구체적인 실현이지만,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를 대비할 장치들은 그 시급함에 비해 더디게 마련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욱이 에너지는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라 많은 부분을 수입으로 충당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견해나 입장에 따라 크게 휘둘려온 그간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어떤 에너지원도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될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분명 세계적인 추세이자 방향이지만, 원자력과 화력 등 다른 에너지원과의 적절한 배분과 계통 및 전력의 수급, 지역이 처한 입지와 경제성 등을 복합적이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균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이미 전국 최대 재생에너지 비율과 전기차 보급률을 달성했으며, 에너지저장장치(ESS), V2G(Vehicle-to-Grid), 가상발전소(VPP) 등 ‘신산업 활성화형’ 분산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을 균형있게 실현할 수 있는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제주특별자치도 의회는 지난 4월 23일 제주를 분산에너지특화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CFI2030’부터 ‘에너지대전환을 통한 2035년 탄소중립비전’ 등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의지를 다양한 정책으로 오랜 기간 실험해 왔으며, 많은 사업자들과 기관들이 이를 차분히 구현하고 있다. 최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탄소중립 K-이니셔티브(Initiative)’ 역시 제주의 선도적 역할을 위한 정책 비전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곧 다가올 차기 대선에서 메가시티, 신공항, 항만시설 확충, 수도이전 등 굵직한 지역 현안들에 비해, 제주가 각별히 공을 들여온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은 주목을 덜 받고 있는 형국이라 사업자 입장에서 아쉬울 따름이다.

브이피피랩 차병학 대표

지난 2024년 6월부터 제주는 이미 전력시장 선진화의 일환으로 실시간 전력시장, 예비력 시장,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등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분산에너지 자원과 전력망 안정화, 유연성 수요자원 확보라는 지상과제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분산에너지 확대라는 국가적인 과제 앞에서 경제성, 입지, 수용성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가를 신속히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많은 과정과 근거로 미루어 볼 때, 제주가 최적이라는 것에 과연 이견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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