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 현장체험기 ③
  • 이건오 기자
  • 승인 2025.06.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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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나라 모로코에 펼쳐진 K-태양광의 새로운 도전

아프리카 북서쪽,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태양의 나라 모로코에서 국내 태양광 기술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은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을 수주해 30개월 일정으로 추진해왔다.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한국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본지는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을 통해 모로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생생한 순간들과 도전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모로코 태양광 기술지도를 수행하면서 느낀 부분 중 하나는, 모로코는 이미 태양광 분야에 어느 정도 기술 성숙도가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국내 유수의 태양광 EPC와 O&M 기업들을 소개하고 관련 기술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잉여전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적 솔루션에 더 큰 니즈가 있음을 발견했다.

2024 World PtX에 한국 대표로 기술 토론에 참여 중인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가운데)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모로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력망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저장 분야에 관심이 높지만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 드는 높은 비용으로 인해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송전 한계로 인해 누르 와르자자트 CSP(집광형 태양열) 발전소가 1년간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수용할 수 있는 전력망이 부족해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재판매를 20%로 제한하는 모로코의 법적 규제와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모로코 태양광 기업들이 요청하는 애로기술지도 분야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모로코 기업들은 이미 한국이 우수한 배터리, 전기차, 수소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잉여전력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유럽 등 전 세계로 수출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 회차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모로코의 수원기관인 IRESEN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 세미나인 ‘World PtX(Power to X)’를 개최하고 있다. 이 세미나의 핵심 주제는 바로 그린수소, 암모니아, e-fuel 등 잉여전력 전환 기술의 공유 및 보급 확산이다.

이번 사업의 기존 목표에만 충실했다면, 애로기술지도 분야를 태양광에 한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손쉽게 사업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책임자로서, 진정으로 이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석유 및 가스 등 부존자원이 부족한 모로코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다. 비록 이번 사업은 태양광 ODA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이처럼 간절히 재생에너지 토털 기술지원을 원하고 있는 수원국의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단을 내렸다. 전기차, 배터리, 수소로 그 범위를 확대하자! 이제는 그들에게 진정한 K-태양광을 넘어 K-재생에너지가 무엇인지 보여주자. 이에 따라 사업 2차년도 하반기부터는 기술 전문가 풀을 기존의 태양광 중심에서 재생에너지 전반으로 확대했다.

이번 3부에서는 태양광을 넘어, 모로코 TASK ODA 사업을 통해 기술력과 위상을 높인 K-재생에너지 기업들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사진 왼쪽부터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지필로스 구정웅 이사, GAIA 요세프 부대표가 GAIA와 지필로스 간 그린수소생산설비 공동개발 협약 이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K-그린수소 기술을 보여주다!

모로코에 수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첫 스타트를 끊은 기업은 지필로스다. 2009년에 설립된 지필로스는 국내를 대표하는 수소 전문기업으로 알칼라인(ALK), 고분자전해질(PEM), 음이온교환막(AEM) 등 다양한 방식의 수전해 설비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필로스는 모로코 현장에서 제주도 풍력발전 잉여전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 사례를 소개하며, 자사의 수전해 설비가 갖는 기술적 강점을 강조했다. 

현재 모로코에는 독일의 티센크루프(Thyssenkrupp)를 비롯한 여러 유럽 수전해 설비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상황이지만, 모로코 수원기관인 IRESEN은 한국의 주요 설비를 활용한 청정암모니아 실증사업을 국제공동연구 방식으로 함께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KTC는 국내에서 암모니아 합성 분야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그리고 수소 안전 관리 전문기관인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협력해, 모로코 사막 환경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청정암모니아 합성 프로젝트를 에너지기술평가원의 국제공동연구사업으로 기획 중이다.

모로코 기업에 장수명 ESS 기술을 소개중인 에이치투(사진 오른쪽 에이치투 김현정 이사)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K-배터리, 바나듐레독스플로우배터리가 나간다!

에이치투(H2)는 2010년에 설립된 국내 대표 바나듐레독스플로우배터리(VRFB, Vanadium Redox Flow Battery) 전문기업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과 상용화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치투가 모로코 전문가단에 초대되기까지는 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번 사업을 수행하면서 모로코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 했던 국내기업은 태양광 글로벌 톱티어 기업 한화솔루션이었다. 

그러나 미국 시장 등에 집중하고 있어 성사는 어려웠다. 다만 한화솔루션이 2대 주주로 있는 에이치투를 소개해줬고, 에이치투 역시 해외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모로코 및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 함께 모로코 출장길에 오르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로코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ESS 특히 장수명 ESS인 VRFB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에이치투의 기술지도를 받은 모로코 기업들은 VRFB가 자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및 전력계통 안정화 전략에 매우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 계열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ESS에 비해, VRFB는 열폭주 및 화재 위험이 없고 20년 이상 수만 회의 충·방전이 가능한 높은 내구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에이치투는 현지 기술지도 이후, 모로코 기업들과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모로코 기업에 전기차 충전기 기술을 소개 중인 채비(사진 오른쪽 두 번째 채비 박유순 부장)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K-전기차충전기, 모로코의 마음을 홀리다!

모로코 정부는 전기차(EV) 및 전기차 충전기 개발·보급을 국가 에너지전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교통 부문의 전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로코는 한국의 전기차 충전기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고, 국내 최고 수준의 전기차 충전기 전문기업인 채비(CHARGEV)를 초청해 기술 전수를 요청하게 됐다. 채비는 완속, 급속, 초급속 등 다양한 충전기를 자체 개발·생산하고 있으며, 실시간 충전소 위치 안내, 예약, 결제, 원격 모니터링 등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과 웹 플랫폼도 운영 중이다.

모로코 기업들, 특히 자체적으로 완속 충전기를 개발한 GEP는 채비의 기술력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양측은 기술 이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한편, KTC는 태양광 전력을 활용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ODA 사업을 모로코 수원기관인 IRESEN 및 채비와 함께 공동으로 기획 중이다.

사진 왼쪽 두 번째부터 IRESEN 사미르 라치디 기관장, 한솔테크닉스 문정훈 선임,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이 한솔테크닉스와 모로코 IRESEN 간 미디어PV 설치 및 실증 협력을 위한 MOU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미디어PV 현지 설치 통해 모로코 사업의 정점 찍다!

ODA 사업은 보통 세 가지 타입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정책컨설팅, 둘째는 연수사업, 셋째는 기자재 설치가 포함된 프로젝트 사업이다.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은 국내 전문가들이 현지에 방문해 기술지도를 수행하는 연수 사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로코 사업을 쉽게 끝내지 말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던 것인지 사업은 점점 스케일이 확대됐다.

2023년 6월, 사업 1차년도에 국내 모듈 제조기업 한솔테크닉스와 모로코 수원기관인 IRESEN은 미디어PV의 모로코 현지 설치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미디어PV는 기존 태양광 패널에 LED를 장착해, 전기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광고 효과까지 낼 수 있는 신개념 태양광 모듈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위축된 국내 태양광 산업 흐름에 한솔테크닉스 역시 부침을 겪고 있었다. KTC 또한 이 사업을 통해 국내 태양광 대표 기업 지원과 태양광 산업 회생의 기회 마련에 책임감을 안고 있었지만, 사업 마지막 해인 2024년까지도 관련 산업 이슈가 이어졌다.

한솔테크닉스 미디어PV 현장 설치 모습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총괄책임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경영 여건을 고려해 설치를 중단하는 결단도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판단에 모로코 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미 산업부 산하 에너지전환부 장관에게까지 사업이 보고된 상황이었고, 설치가 무산될 경우 현재 ODA 사업 전체가 원활히 추진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양측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기업 측에는 당장의 손익이 아닌 모로코 및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한 미래 투자라는 관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한솔테크닉스 임원 및 실무진들을 설득했다.

모로코 정부 고위층을 상대로 미디어PV를 소개 중인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모로코 측에는 통관 등 일부 설치 비용을 분담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 마침내 한솔테크닉스는 그룹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했고, 2024년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닷새 간 미디어PV 현장 설치가 진행됐다.

설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미 설치된 구조물과 항공편으로 운송된 미디어PV 패널 간 이격이 발생해 연일 새벽까지 재시공이 이어졌다. 급기야 현장 시공을 맡은 모로코 시공사가 한솔 측과의 의견 차이로 공사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애초에 기자재 설치는 이번 TASK ODA 사업에서 필수 항목이 아니었기에 총괄책임자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따랐다. 그러나 끊임없는 중재 끝에 결국 공사는 재개됐고, 미디어PV의 LED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환호했다. 9월 26일 오전에는 모로코 정부 고위 인사들을 초청한 준공 세리머니가 예정돼 있었기에 밤을 새워 마무리한 작업이었다.

 모로코 미디어에 소개된 한솔테크닉스 미디어PV 현지 설치 준공식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한솔테크닉스의 미디어PV 설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준공식에서 모로코 수원기관 IRESEN의 사미르 라치디 기관장은 “모로코는 2030년 스페인, 포르투갈과 함께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있다”며, “미디어PV를 통해 재생에너지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솔테크닉스의 미디어PV를 모로코 국회의사당에도 설치해 줄 것을 공식 제안했다. 이후 11월, 한솔테크닉스 담당자들과 함께 다시 모로코를 방문해 국회의사당 시설 담당자와 설치 위치를 기술적으로 검토했고 현재는 설치 일정에 대해 조율 중이다.

모로코 국회의사당을 미디어PV 설치 협의를 위해 현장 방문한 한솔테크닉스 실무진들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 대장정이 끝나다

30개월간 이어졌던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이 2024년 12월 31일부로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사업기간 동안 국내 태양광 및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 30여곳이 전문가 자격으로 모로코 현지를 방문했고, 모로코 내 기업과 기관 20여곳 이상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10건이 넘는 한-모로코 기업 간 MOU가 체결됐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50건 이상의 관련 기사가 보도됐다.

국내기업들은 그동안 막연히 ‘미지의 땅’으로만 여겨졌던 모로코를 직접 밟고, 모로코는 물론 아프리카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피부로 느꼈다. 또한 현지에 우리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제적 교류도 이뤄졌다. 특히, 모로코 수상태양광 발전소 구축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한-모로코 드림팀’이 구성됐으며, 미디어PV의 현지 설치는 국내 태양광 기술 수출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이 모든 성과는 사업의 본래 취지를 충실히 살리고, 관련 기관과 참여자들이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필자 역시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2024년 11월 18일에 개최된 ‘2024 한국에너지대상’에서 국무총리표창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모로코 수원기관 IRESEN 회의실에서의 단체 사진(사진 왼쪽 IRESEN 사미르 라치디 기관장) [사진=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기고를 마치며...

바쁜 업무 일정을 쪼개어 모로코 태양광 TASK ODA 사업 체험기를 3부작으로 연재하면서,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번 사업을 수행하며 총 15차례나 모로코를 방문했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로코와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됐다. 아랍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한 모로코인들의 뛰어난 역량, 그리고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정(情)’은 한국인만이 갖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로코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도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KTC 조성대 책임연구원

올해 초에는 현대로템이 2조원 규모의 모로코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하며, 현재 한국과 모로코 간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긍정적인 분위기다. 모로코 정부는 TASK(애로기술지도) 사업 시즌2는 언제 시작되느냐며 관심을 계속 보이고 있다. 그만큼 모로코 측에서도 이번 사업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도 대한민국과의 기술 교류를 지속하길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KTC는 향후에도 ODA 사업뿐만 아니라 국제공동연구, 국제온실가스감축사업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모로코와의 경제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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