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오송지하차도 참사 등 유족과 대화…"아픈 말씀 듣고 대책 만들겠다"
"이태원 3주기 추모식 참석해달라"·"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건의사항 경청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월호·이태원·무안 여객기·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의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라는 제목의 행사를 열고 참사 유족 200여명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국가의 제1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국민이 위협을 받을 때 국가가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점에 대해 공식적으로 정부를 대표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보고 일부 유족은 흐느꼈고, 몇몇 유족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사죄의 말씀으로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 리도 없고, 유족의 가슴에 맺힌 피멍이 사라지지도 않겠지만 다시는 정부의 부재로 국민이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행사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304, 159, 14, 179, 저마다의 이름과 꿈을 안고 스러져 간 656개의 우주를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남겼다.
이 숫자는 각각 세월호 참사 희생자(304명), 이태원 참사 희생자(159명), 오송 참사 희생자(14명), 무안 여객기 참사 희생자(179명)를 의미한다.
이 대통령은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반복됐고, 피할 수 있었던 비극 앞에 무력했다"며 "미흡했던 대응과 변명, 회피, 충분하지 않았 던 사과와 위로까지, 이 모든 것을 돌아보고 하나하나 바로잡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 발언도 이어졌다.
최은경 오송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재난 이후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며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송해진 이태원참사 유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태원참사 정보를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제공할 것, 참사 전후 경찰의 수사기록 일체를 공개할 것 등을 제안했다.
김유진 무안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 특별법 개정을 통한 진상 규명 ▲ 둔덕과 항공 안전 시스템에 대한 전수 점검 ▲ 트라우마 센터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종기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에 대한 사과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들었지만, 이후의 2차 가해나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기록물이나 참사에 대한 국정원 및 군의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세월호가 왜 갑자기 단시간에 침몰했는지, 304명이나 되는 국민을 왜 한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등 핵심적인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피해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생명안전기본법이 올해 안에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애끊는 그리움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유족들에게 국가가 등 돌리는 일은 이재명 정부에서는 결단코 없을 것"이라며 "오늘 전해준 말씀을 전부 철저히 검토하고 가능한 영역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추진해 가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공식 사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형 참사의 책임 당사자는 아니지만 정부가 역대 정권의 사고 책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 발생한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 무안 여객기 참사 모두 보수정권 때의 사고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중'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이재명 정부가 그 핵심 국정철학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에 비해 전향적인 자세라는 평가가 많다. 정부와 국민들간의 안전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면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와 노력도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