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조종사노조 반발·마일리지 통합 등 과제 산적
산은 투자금 회수시 경영권분쟁 재발 여부 최대 변수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두 회사 모두 현재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고, 통합해 가는 과정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는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려면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공식화 한 후 맞은 2021년 새해 인사에서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의 발언 내용이다.
약 4년을 끌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해 이달 중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C가 제시한 기업 결합 조건을 대한항공이 모두 이행한 만큼 조만간 EC의 최종 승인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예상대로 EC의 최종 승인이 이뤄지면 대한항공은 오는 12월 20일까지 제3자 배정방식으로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 주식 1억3157만8947주(지분율 63.9%)를 취득,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 4년여에 걸친 다사다난한 합병…그 시작은 한진家 경영권 분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는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시각이다.
양사의 기업결합은 202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검토를 공시했고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양사 간 통합을 추진했다.
이에 앞서 벌어진 한진가(家)의 경영권 다툼은 양사 합병의 촉매제가 됐다. 2020년 1월 당시 강성부펀드로 알려진 KCGI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함께 ’3자연합‘을 꾸리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야기했다.
이 분쟁에 산업은행이 조 회장 측을 지원 사격하면서 판세를 뒤엎었고 KCGI 연합은 경영권 다툼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산업은행이 조 회장 측의 백기사로 나선 것은 자본잠식 위험에 처해 있는 아시아나항공을 계속 지원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조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을 떠넘겨야 하는 산업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같은 이유로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추진, 한진칼에 총 8000억원을 투자해 당시 지분 10.7%를 확보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산업은 바닥을 치던 시기였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떠안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은 아예 없었다. 2020년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무려 12조원에 달했다.
결국 정부 입장에서는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 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성사되도록 하는 게 가장 '현실적 대안'일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이후 대한항공은 일사천리로 합병을 추진, 2021년 1월 필수신고국에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2021년 튀르키예(2021년 2월)를 시작으로 대만·태국·필리핀(2021년 5월), 말레이시아(2021년 9월), 베트남(2021년 9월), 한국·싱가포르(2022년 2월), 호주(2022년 9월), 중국(2022년 12월), 영국(2023년 3월), 일본(2024년 1월), EU(2024년 2월) 등 지금까지 4년여 동안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국 중 13개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냈다.
다만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올해 2월에야 양사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여객부문은 티웨이항공을 올해내에 유럽 4개 노선의 대체항공사로 진입시키고, 화물부문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중에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매각만 남았다. 유럽연합은 매수자인 에어인천에 대한 현장실사를 진행하며 적합성을 평가하는 중이다.
EC의 심사가 종결되면 미국 DOJ 심사도 완료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DOJ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독과점 소송을 하지 않으면 승인으로 간주한다. 대한항공은 미주 노선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에어프레미아와의 미주 노선 연계 운항 확대를 이미 이행했다.

이처럼 4년여의 다사다난했던 과정을 거쳐 양사가 한 몸이 되면 ’통합 대한항공‘은 항공기 200대 이상을 보유한 세계 10위권의 메가항공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국내 항공산업 역시 36년간 이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립 체제에서 단독체제로 재편된다.
다만 앞으로 출범하는 통합 대한항공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조종사노조는 항공사에서 입김이 센 조직으로 꼽히기 때문에 노사간 갈등은 통합 과정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화물사업부 매각 관련 이사회 결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지난 10월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이달 22일 서울남부지법이 노조의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지만 노사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노조는 에어인천으로 고용 승계될 화물기 조종사들의 승계 거부권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며 “독자적·안정적 화물 노선 운영이 불투명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울러 유럽 여객 4개 노선을 넘겨받은 티웨이항공에 대해서는 운영 능력을 면밀히 검토해달라거나, 대한항공이 제출하고 산업은행이 승인한 양사 통합계획서(PMI)도 공개하라고 회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민감해하는 양사 간 마일리지 통합 작업도 여전히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대한항공의 미사용 마일리지 규모는 2조 5278억원, 아시아나항공은 9758억원에 달한다. 합산하면 약 3조 50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대한항공의 약 80%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양사 합병으로 1마일리지의 고객 피해도 없게 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어 대한항공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LCC 통합 작업에서의 진통도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진에어,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지역 일부 기업은 에어부산 지분을 16.15% 보유하고 있다. 이에 부산시는 에어부산 분리 매각과 함께 통합 LCC 본사를 부산에 두기를 원한다. 통합 LCC가 탄생할 경우 여타 LCC의 반발이 예상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양사가 통합을 완료하면 10.58%의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이 한진칼 주식을 보유할 명분이 사라져 지원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지분은 5.78%다. 14.90%의 지분을 보유한 델타항공, 산업은행 등 우호세력 지분을 모두 합하면 31.26%에 이른다.
산업은행이 10.58%의 한진칼 지분을 모두 처분한다면 또다시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수도 있어 최대 변수이자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