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소재 가격 인상에 제품 값 도미노 상승 우려 확산… “소비자와 국민에 피해 전가”
‘가격인상 시한폭탄’ 등 업계에 번지는 공포 분위기도 만만치 않아 갈수록 우려 확산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오는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고려아연의 명운이 갈리는 그날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오자 산업계에서는 국내 아연 공급망이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영풍·MBK파트너스로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새로운 아연 공급 독점체제가 출범되면서 가격 인상 등 부작용에 따른 공급망 교란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비철금속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아연 수요는 약 43만5000t으로, 이 가운데 고려아연이 29만5000t, 영풍이 10만3000t을 공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아연을 생산하는 두 곳뿐인 이들 회사에서 국내 아연 수요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철의 부식 방지를 위한 도금 원료인 아연은 건설과 자동차, 가전제품의 외장재 등 여러 산업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아연 등 비철금속 제련업이 국가기간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연 가격은 런던금속거래소(LME) 단가를 기준으로 공급사가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한다. 그간 국내에서는 고려아연과 영풍 두 회사와 주요 고객사가 적절한 협상과 경쟁사를 의식한 가격 책정 등을 통해 큰 문제없이 원활하게 제품을 공급해 왔다.
업계에서는 아연을 특정업체가 독점할 경우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아연과 불가분의 관계인 철강업계가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그간 고려아연이나 영풍과 오랜 시간 거래를 통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 협상을 해왔는데, 사모펀드가 개입될 경우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MBK의 경우 단기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사모펀드라는 기본 특성으로 인해 수익 확대가 필요할 때는 가격을 올리고, 아연 수요 확대 등으로 공급자의 협상력이 높아질 때도 마찬가지로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MBK는 국내 기업들을 인수한 뒤 투자금 회수 등을 위해 구조조정이나 핵심자산 매각, 가맹점 폭리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섞인 지적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아연 가격 인상은 결국 철강 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철강사들의 경우 이미 값싼 중국산의 물량 공세와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국내 철강업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비용 부담과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국내 철강사들이 중국산으로 시선을 돌릴 경우 장기적으로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중국의 아연 공급에 크게 의존할 경우 미중 갈등과 공급망 경쟁 속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려아연 인수 주체로 알려진 MBK파트너스 6호 펀드의 출자자, 즉 자금원의 80% 이상이 해외 자본이라는 점, 특히 중국과 중동에서 상당수 자금이 유입된 점도 이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비철금속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연은 그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철강 등 산업 전반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필수 소재이자 국내 전산업에 필요한 금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아연 등 주요 금속의 생산과 가격 결정이 사모펀드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