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지 회송 절차 현장 점검도…"개표일까지 안전한 장소에 보관될 것"
선거관리의 기본조차 이행하지 못하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관료집단 전락 비판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31일 "지난 (대선) 사전투표 날(29∼30일)에 있었던 투표 부실 관리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성동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선거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문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서 엄정한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신촌동 사전투표소 투표용지 반출 사태 등이 발생한 지난 29일 김용빈 사무총장 명의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공식 입장문을 낸 데 이어 선관위원장이 나서서 다시 한번 사과한 것이다.
사전투표 기간 발생한 투표용지 반출, 배우자 대리투표 등과 관련해 중앙선관위의 부실한 관리 실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선관위원장이 직접 사과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노 위원장은 또 "많이 보도된 것처럼 지난 이틀 동안 전국적으로 선거 방해 행위가 있었다"며 "조직적인 것으로 보이는 투표원(투표관리관)들에 대한 협박, 폭행, 사무실 무단침입(이 있었고), 또 그로 인해 상해를 입은 직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은 직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선관위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법적 절차를 통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이날 관외 사전투표용지 회송 절차에 대한 현장 점검 차원에서 성동구선관위를 찾았다.
노 위원장은 "이제 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와 함께 우체국을 통해서 유권자의 주민등록지 관할 구·시·군 투표소로 접수하게 된다"며 "정확한 숫자와 정당한 유권자가 맞는지 정확하게 점검하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왔다"고 설명했다.
노 위원장은 "정당 참관인들도 함께 정확하고 안전하게 유권자가 행사한 한표 한표를 소중하게 관리하며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겠다"며 "(투표용지는) 이런 절차를 거쳐서 개표일까지 안전한 장소에 보관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부정선거에 대한 여러가지 지적과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를 불식시킬 만한 엄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선거 때마다 부실관리 사건들이 터지면서 선관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다른 헌법기관과는 다르게 중앙선관위는 그 수장과 상임위원이 삼권분립기관에서 구성한 비상임 위원들의 호선으로 위원 중에서 임명된다. 다른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은 형식적으로는 전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만큼은 비상임위원들의 임명절차부터 3부가 완전히 따로 진행하고 그 중에서 누가 수장이 될지는 스스로 정하게 되어있다.
이는 선관위에 대한 일종의 '특혜'라는 게 중론이다. 그만큼 선거관리가 중대한 국가작용이니 상호견제를 통해 감시하라는 의미에서 수장의 임명도 선관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관례상 정치적 성격이 강한 국회 선출 위원이나 대통령의 영향력이 우려되는 대통령 임명 위원이 아닌 대법원장 지명 위원(법관)이 위원장 및 상임위원으로 호선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그들만의 임명'이 수십년 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조직 내 감시와 통제 세력이 거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인 것이다. 그 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 간부 자녀 채용 특혜 논란과 같이 '가족 회사' 수준의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2025년을 기점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선관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헌법상 독립 배경을 살펴보면 그 '자율적 권한 행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로 우리나라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가 처음 치러졌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선거에 관한 사무는 공직선거법과 기타 다른 국민투표법에 의해 행정기관에 설치된 ‘선거위원회’가 관장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을 겪고 6월 15일 대한민국 제2공화국 제3차 개정헌법에 '중앙선거위원회'를 담았다. 부정선거에 대한 역사적 반성으로 헌법상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기구가 폐쇄되며 잠시 기능을 상실했다가 1962년 12월 26일 대한민국 제3공화국 제5차 개정헌법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근거를 두었다. 이후 1963년 1월 21일 제정된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 창설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62년동안 선관위는 각종 선거관리 업무를 전담해온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선거관리만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선관위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자 그들의 존재 이유인 '중립적이고 엄정한 선거관리'의 기본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21대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도 투표지를 들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유권자가 발생할 정도로 선거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선거관리의 기본조차 아직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실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또다시 사과를 하고 나섰다. "선관위는 일은 안 하고 사과만 하는 집단이냐"는 따가운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고위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등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고 이번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부실관리 지적이 나오면서 또 다시 사과만 반복할 뿐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따끔한 비판도 나온다.
선관위의 독립과 자율성 보장은 선거관리의 중립성을 지켜주기 위해 국민들과 헌법이 선관위에 준 일종의 '특혜'다. 그런 독립성을 교묘히 이용해 그들만의 특권의식에 빠져 있고 이제는 선거관리의 기본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관료 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국민들은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관위에 그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